2025 SaGA STORY 10월호
2025년 10월 29일
▶PDF 전문보기 : https://myzip.kr/J5vA29NOx



오랜 세월(약 40년) 신앙생활을 이어오면서 분주하고 짜임새 없는 믿음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믿음의 정체성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2024년 11월, 김대순 학장님의 권유로 2025년 레거시아카데미 4기에 등록하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레거시아카데미 수업을 통해 성경 속 인물들의 삶에서 믿음의 계승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배웠습니다. 또한, 그들이 겪은 고난과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은혜와 절묘한 섭리를 탁월한 강사님들의 강의를 통해 생생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믿음의 명문가정을 세우기 위해 함께 진지하게 토론하는 레거시님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매주 토요일 강의 시간을 기다리게 하고, 기대하게 하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가장 큰 은혜와 도전은 바로 다음 세대를 향한 믿음의 계승이었습니다. 폭넓고 깊이 있는 강의들을 통해 ‘믿음의 유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고, 매주 나누는 토론의 시간마다 새로운 결단과 감동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저 또한 다음 세대를 위해 믿음의 유산을 잘 이어가는 사명자의 삶을 소망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제 마음의 중심에 자리 잡았습니다. 레거시 아카데미를 통해 가정 안에서의 부흥이 일어나고, 교회와 공동체 속에서도 작은 겨자씨 같은 믿음의 레거시가 자라나길 소망합니다.

남은 생애 동안 믿음의 계승을 위해 가슴 뛰는 설렘으로 아름다운 노년을 완주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믿음의 공동체 레거시의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제가 친정 어머니께로부터 이어온 믿음의 유산이 끊어지지 않고 4대, 5대로(아들과 손녀들까지) 계속 잘 이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고귀하고 보배로운 믿음의 계승을 위해, 저를 믿음의 그릇 레거시로 사용하여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저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 없이 영적 고아로 살아온 47년과 사랑의교회에서 하나님을 처음 만난 후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온 19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985년,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나의 인생 목표는 단 하나였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 그 결심 하나로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전력투구하며 달렸습니다.
그 결과 37세에 세계적 글로벌 기업의 임원으로 승진했고, 45세에는 중국지사 영업 총괄 부사장으로 발령받으며 세상 속에서 꿈꾸던 비전을 이루는 듯한 시간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성공은 늘 공허했습니다. 끊임없는 긴장감과 더 많은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 물질 중심의 삶 속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는 영적 결핍의 연속선상에 서 있었습니다


2007년, 한국으로 돌아와 생활하던 중 대학 후배의 권유로 사랑의교회 새생명축제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이 바로, 내 인생의 카이로스(Kairos), 즉 하나님을 처음 만나는 결정적 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 이어진 가을 특별새벽기도회에서 하나님을 더 알고자 하는 갈급함이 내 안에 일어났고, 그 갈급함이 나를 매일 교회로 이끌었습니다. 지금까지 19년 동안 새벽기도, 토요비전새벽예배, 주일예배를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하나님과의 만남의 축복을 누려왔습니다.
시편 125편 1절 말씀처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이 말씀은 내 삶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매일이 축복이고, 매시간이 감격이며, 하나님의 평안과 비전을 경험하는 은혜의 시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세 가지 삶의 방향을 주셨습니다.

2015년, 정년을 3년 앞두고 나는 두 길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제자훈련에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박사과정을 시작할 것인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면서도, 정년 이후의 불안함 때문에 박사과정을 택하려 했습니다.
결국 지원서를 내고 합격 통보까지 받았지만, 입학을 며칠 앞두고 담당 교수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죄송하지만 총장님 교체로 인해 올해는 박사과정 신입생을 받지 않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순간 화도 나고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마침 제자훈련 지원 마감이 일주일도 남지 않아 급히 순장님의 추천서를 받고 지원했습니다. 만일 그때 제자훈련을 포기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입니다.
제자훈련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다듬으셨고, 소그룹 리더로서의 책임감과 영적 리더십을 주셨습니다. 이후 일터선교&글로벌네트워크아카데미 1기로 입학하여 ‘BAM (Business as Mission)’, 즉 일터를 통한 선교의 실천으로 삶의 영역이 확장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SaGA와 MOU를 맺은 Bakke 대학 박사과정에 진학하였고, 2025년 6월 7일, 미국 텍사스 달라스에서 “변혁적 제자훈련과 온전한 제자도의 삶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과정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일의 우선순위는 세상의 순위와 다름을 몸소 경험한 귀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합니다.

매일 일터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영적 훈련의 장입니다. 특히 제자훈련을 마친 순장들에게는 반드시 이수해야 할 필수 영적 과정이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통해 우리는 일터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갑니다.
SaGA는 세상 밖에서만 모이는 영적 리더 모임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을 실천하는 BAM 리더를 세우는 결정적 플랫폼입니다.

제자훈련을 마쳤다는 것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같습니다. 오정현 총장님의 ‘온전론’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교회와 세상 속에서 반드시 실천해야 할 명령임을 깨달았습니다. 예배현장, 가정현장, 일터현장, 선교현장, 문화현장, 이 다섯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하루하루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을 경험하고자 합니다.


COVID-19의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SaGA를 개설해 주신 오정현 총장님의 결단력, 그리고 일터선교&글로벌네트워크아카데미 학장이신 이돈주 학장님, 유종성 부학장님의 헌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의 섬김으로 말미암아 BAM 리더들이 각자의 일터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며 영적 역량이 확장되고 재생산되는 역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 또한 “훈련받은 제자”에서 “보냄받은 제자”로서 일터에서 복음을 살아내는 삶을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사랑글로벌아카데미 3기를 수료하면서, 저는 ‘하는 일이 곧 선교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수료 후 아내와 함께 Bakke 대학원에 입학하여 이번에 졸업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입학 당시에는 일본 기독교와 선교 역사를 정리하고 싶었고,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Bakke 대학원에서 쓴 제 박사 논문은 “일본 최초의 선교사 노리마쓰 선교사의 변혁적 리더십”에 관한 것입니다. 그분의 성육신적 리더십과 헌신을 연구하면서 저 또한 그것을 배우고 실천해야겠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노리마쓰 선교사님의 사역은 오다 나라지 선교사로 이어졌고, 그 복음의 흐름은 지금도 이어져 한일 양국이 선교적 공동체로 함께 복음을 전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노리마쓰 선교사님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와 수원 동신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하셨으며, 병이 악화되어 일본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전국을 다니며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지금은 유언에 따라 수원 동신교회에 안장되어 계십니다.
그 뒤를 이은 오다 나라지 선교사님은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를 단호히 거부하다 한국에서 추방되었고,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는 재일 한국인을 섬기며 평생 목회하셨습니다. 이름도 ‘전영복’으로 개명하며, 한국 정부의 상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일을 했을 뿐”이라 고백하셨습니다.
저는 이 두 분을 비롯해 일본기독교사에 기록된 아리요시 주이치(조선총독부 정무총감)와 와다세의 사례를 분석하며, 순수한 복음전도와 섬김, 변혁적 리더십의 지속적 영향력을 확인했습니다. 반면 국책지향적 선교의 한계도 함께 드러났습니다.
결론적으로, 노리마쓰 선교사와 오다 선교사의 복음 사역은 한국과 일본의 선교적 협력과 지속성을 위한 귀한 자산이 될 것이며, 현재 일본 인구의 1% 미만인 신자 비율 속에서도 복음 전파의 큰 울림을 이어갈 것이라 믿습니다.
학문적으로는 1차 자료를 통해 사역을 재조명하고, 문화인류학적 시각에서 선교사들의 ‘이동’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살펴보았습니다. 앞으로도 이들의 사역이 정리·보존되어야 하며, 한일 간 선교 협력을 위한 학문적 조명과 실천이 더욱 필요합니다.
현재 저는 아내와 함께 일본 쓰쿠바의 일본인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아오야마 학원대학에서의 연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오직 주님께 영광이 돌려지도록 사명을 다하고자 합니다.




레거시는 인생 십플러스(10+)를 드리는 최적(最適)의 시간이다. 모든 기독교인은 적어도 인생의 십플러스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십플러스의 삶의 모습을 다음 세대에게 영적 유산으로 남겨야 하지 않을까?
구약 시대의 개념은 소득의 양에 상관없이 정해진 비율(percentage)에 따라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었다면, 신약 시대는 소득 양에 비례하여(proportion) 드리는 개념이다. 신약 시대는 기본적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것 위에 플러스(+)로 더 드리는, 십일조를 넘어선(Beyond Tithing) 삶을 추구한다.
일터의 공간인 직장과 시장에서 30~40년 동안 땀 흘려 일하여 얻은 총소득과 삶의 십일조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60~65세에 은퇴한 후, 남은 인생을 다음 세대에게 레거시를 남기기 위해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가야 할지 깊이 고민하며, 또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알렉스 컴포트는 “가장 이상적인 은퇴 시간은 2주이다.”라고 하였다. 제임스 휴스턴은 “은퇴는 기독교인들이 쓸 단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은퇴 후 잠자고 있는 몸의 세포들을 깨워 다음 세대에 신앙의 바통을 계승하는, 가슴 뛰는 레거시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남은 인생을 구체적으로 어떤 원리에 이끌려 살아가야 하는가?

레거시는 인생의 십플러스를 드리는 마음을 담은 시간이다. 인생의 평균 길이는 70세이며, 건강하면 80세이다(시편 90:10). 그렇다면 인생 여정의 10%+ 시간을 온전히 드려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은 어떨까?
이 땅에 태어나 세상의 교육 기관에서 오랜 교육을 받은 후, 직장이나 시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가정을 성실히 돌보았다면, 은퇴 후 60~65세가 되었을 때 남은 인생의 20~30년 중 6~7년은 주님께 온전히 십일조 개념으로 드려야 하지 않을까?
몸이 건강할 때 오직 주님의 나라를 위해 100%의 시간과 100%의 마음을 드리는 사명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나이 들어 몸이 연약하게 되면 인생의 십플러스를 드리고 싶어도 드릴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솔로몬의 전도서에 기록된 지혜처럼, 십플러스를 드릴 수 있는 적절한 때가 있다. 최선의 시간 기부, 재능 기부, 재정 기부의 삶은 다음 세대에게 레거시를 남기는 길이다.


인생의 십플러스를 드린 성경의 최고 모델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33년의 생애 가운데 인생의 마지막 3년을 십일조 플러스(+) 개념으로 온전히 드리셨다.
탄생 후 12년은 부모님의 돌봄 아래에서 성장하셨고, 13세부터 29세까지 16년은 삶의 일터에서 가정을 위해 손에 목공 도구를 잡고 성실히 일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3년은 영원한 레거시를 남기기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명에 온전히 드리셨다.
3년간의 헌신을 통하여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꾸시며 제자들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축하는 기초를 세우는 레거시를 제자들에게 남기셨다.


모세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섭리 아래 인생의 십플러스를 드린 구약의 대표적 모델이다. 그는 레위 지파의 혈통으로 태어나 40년 동안 애굽 왕궁에서 왕자로 최고의 교육 환경 속에 성장했다.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섬김과 권력을 누렸으나, 애굽 사람을 살해한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바로에게 쫓겨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다. 이후 광야에서 40년 동안 무명인으로 양을 치며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를 80세에 사명자로 부르셨다. 80세부터 120세까지 40년 동안 사명의 삶을 살며 자신의 인생의 1/3을 십플러스 개념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레거시를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남겼다.


메리 스크랜턴은 인생의 십플러스를 드린 여성의 모범이다. 남편을 잃은 후 과부로 살던 그녀는, 아들과 함께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52세가 되던 해인 1885년 미국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생면부지의 땅, 조선에 도착했다.
그녀는 이화학당을 설립하여 1904년까지 섬겼다. 76년의 인생 중 18년을 한국 여성 교육을 위해 헌신했으니, 인생의 십일조를 넘는 23%를 선교 사명에 드린 셈이다.
그녀의 몸은 조선 땅에 묻혔고, 어둠 속에 살던 수많은 여성들에게 레거시를 남겼다.

한국 교계와 기독교인 가운데 십플러스 레거시 운동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며 기도하자.

